“족보는 현재 우리 역사가 지시하는 이상인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데 걸림돌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걸림돌을 사회적으로 유력한 인사들이 제거하기는커녕 도리어 이를 과대 포장하고 있다.”
원로사회학자인 이기백(李基白.75)서강대 명예교수가 반연간지 ‘한국사시민강좌’(일조각) 제24집에 기고한 ‘족보와 현대사회’라는 글에서 밝힌 입장이다. 이 잡지의 편집인이기도 한 이교수는 이 글에서 지난 97년 ‘한국출판연감’에서만 76건이나 간행된 것으로 확인된 족보의 현대적 의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피고 있다.
“전통문화 가운데는 현대적으로 계승해야 할 측면과 동시에 버려야 할 측면도 있다”고 전제한 이교수는 족보가 현실생활면에서 조상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혈연적 계보에 대한 이해를 도우며, 역사적인 자료로서 유용한 기록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족보의 부정적인 측면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 이교수의 지적이다.
조선후기에 들어와 신분질서가 문란해지기 전까지 전체인구에서 보통 양반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정도였다. 결국 현재 인구의 대부분은 상민이나 노비의 자손인 셈인데 많은 가정에 족보가 있다면 이것은 진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믿기 힘든 것이다. 이에 따라 이교수는 “현대에 들어와서도 ‘단성호적’에 나타난 사노(私奴) 흥룡(興龍)의 후손임이 분명한 사람이 족보를 들어 양성지(梁誠之)의 후손임을 주장하거나 해방 초기 한 서울대총장의 경우처럼 자기 아버지의 신분이 노비였음을 밝혔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아들이 부친의 전기를 출판하면서 양반출신으로 기록한 사례 등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신분에 의해 인간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지위를 규정하는 낡은 시대의 유산일 뿐”이라고 밝힌 이교수는 “족보를 가지고 자기의 신분을 과시하려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는 날이 곧 진정한 민주사회가 이루어지는 날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한국사강좌’ 제24집에는 ‘족보가 말하는 한국사’라는 특집주제 아래 이교수를 비롯해 김용선(한림대) 이수건(영남대) 송찬식(전국민대·작고) 백승종(독일 튀빙겐대) 노명호(서울대)교수등이 기고한 6편의 글이 실려있다.
문화일보 1999/03/18
<최영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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