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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조선중후기 계보학/가문이야기

명문가탐방 -여흥민씨 법가의 표본 by famtree

여흥민씨 법가의 표본 

여흥민씨 좌의정 민정중 고조 민사용 가문은 법가의 표본이다. 나라에서 이 가문을 인정한 것이다. 이 집 민유중의 딸을 숙종의 계비로 맞아 들인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이 집에는 인현왕후 탄생 배경이 있다. 이 가문의 파조 민사용은 군수를 지냈다. 민사용은 명종 때 호조판서를 지낸 민제인의 아들이다. 민사용 은 아들을 여러 명을 낳았는데 그 중에서 여임, 여검이 현달했다. 둘 다 문과하여 하나는 공조참판, 다른 하나는 울산부사를 각각 지냈다. 그 중 특히 여검은 청백리로 명성을 날렸다. 이 두사람의 맏집 조카 기[생 부는 여준, 양부는 여건]는 문과하여 경주부윤을 지냈다. 기의 아들 광훈은 문과에 장원하여 관찰사가 되었 다. 민광훈은 1595년에 태어나 1659년에 세상을 떠났다. 자는 중집이다. 1652년 승지를 거쳐 1653년 강원도 관찰사로 나갔다. 선정을 베풀어 관리로 이름이 있었다. 민광훈은 조야에 신망이 높았던 삼형제 민시중,정 중,유중을 나았다. 민시중은 1625년에 태어나 1677년에 몰했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1664년 문과에 장원하여 이조참판을 지 냈다. 학행으로 명성이 있었으며 충성스럽고 덕성이 두터웠다. 민정중은 1628년에 태어나 1692년에 세상 을 떠났다. 역시 송시열의 문인이다. 1649년 문과에 장원하여 좌의정에 올랐다. 학덕으로 존경을 받았으며 세상 사람들이 \"노봉 선생\"이라 일컬었다, 민유중은 1630년에 태어나 1687년에 별세했다.1650년 문과하여 형조판서,한성판윤 등을 지냈다. 1681년 딸이 숙종의 계비가 되자 영돈녕부사가 되고 여양부원군에 봉해졌 다. 민시중,정중, 유중 삼형제는 삼방파라고 부른다. 삼방파 삼형제는 서인 노론에 속했으며 문장과 덕망으 로 모두 유명했다. 시중의 아들 진주는 문과하여 이조판서, 정중의 아들 진장은 문과 장원하여 우의정, 유 중의 아들 진후는 문과하여 좌참찬, 유중의 또 다른 아들 진원은 문과하여 좌의정을 지냈다. 이 중에서 특 히 민정중의 아들 진장이 학문으로 명성이 높았다. 할아버지[광훈],아버지[정중]와 함께 3세문장으로 이름 을 날렸다. 이러한 가풍 속에서 민유중의 딸은 왕비로 뽑혔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학문과 덕성을 배웠으며 외할아 버지 송준길의 사랑을 받으며 훌륭하게 자라 왕실에 들어 갔다. 예의가 바르고 법도가 있어 왕실의 상하 어 른, 아랫 사람 부터 많은 궁녀 까지 아끼며 우러러 봤다. 만백성의 추앙을 받았다. 이것이 모두 법도 있는 이 집안의 교육의 덕이며 덕성스런 가풍의 여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명문 (2004-06-13 오후 12:13:05)   Hit : 111   Vote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