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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조선중후기 계보학/가문이야기

만산 강용 선생 행장 만산(晩山) 강용(姜鎔) 선생 행장 공의 휘(諱)는 용(鎔)이요, 자(字)는 계명(季明)이요, 호(號)는 만산(晩山) 혹은 정와(靖窩)라 한다. 강씨의 상계에 선조 휘(諱) 시(蓍)는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에 봉해지고 공목(恭穆)이란 시호가 내렸다. 강시(姜蓍)의 아들 휘(諱) 회중(淮仲)은 호(號)가 통계(通溪)이며 보문각 대제학을 지냈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의(義)를 지켰다. 강씨는 조선조에 들어와 명경(名卿)이 배출되고 널리 이름난 성씨가 되었다. 휘(諱) 위빙(渭聘)은 호(號)가 서호(西湖)이며 병자호란을 맞이하여 세자익위사 익위[세자 경호실장 격]로 배종(陪從)하였다.묘사(廟社)가 강화도로 들어갔을 때 청나라 오랑캐들과 맞서 저항하다가 순국하여 이조판서에 증직 되고 충렬(忠烈)이란 시.. 더보기
[명문가탐방]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이 시끄러운 이유 2 by familytree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이 시끄러운 이유 2 도대체 안동김씨 가문과 반남박씨 가문의 흉을 왜 민씨 집에 와서 하는가 ? 그것도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다른 장에서 보학에 대한 소견을 밝히면서 잠시 그 이유를 들었으나 그것으로 부족한 듯하여 덧붙이고 자 한다. 보학이란 나나 남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행적을 정성스럽게 살펴 보고 그 좋은 점을 본 받고자 하는 것 이 그 취지라고 할 수 있다. 그 분들의 흉은 말하고 듣는 것 조차 피하는 것을 불문률로 하고 있다. 요즈음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폭력 영상물을 금하는 원리와 같다. 오늘의 폭력 영상물을 뿌리 뽑을 수 없듯이 인간 세상의 흉도 없앨 수 없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흉을 허공에 대고 퍼붓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임금의 흉도 없는 데서는 한다고 .. 더보기
[명문가탐방]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이 시끄러운 이유 1 by familytree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이 시끄러운 이유 1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이 시끄러운 이유 앞에서는 조용했다. 안동김씨 김생해 가문이나 반남박씨 박소 가문에서는 조용하더니 여기와서는 왜 갑자기 시끄러운가? 지금까지는 부드럽고 점잖은 듯한 표현을 하다가 여기서는 왜 표독하고 못된 논조로 바뀌는가? 듣기 민망 할 만큼 덕담으로 일관하더니 왜 비난과 성토 일색인가?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은 명성왕후 민중전의 친정 집이기 때문이다. 듣고 본 것이 얕고 짧은 탓에 확실이 모르지만 서양인가 어디 황제가 "짐은 국가다."라고 큰소리 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명성왕후는 황실의 안주인이다. 국모가 왜적에게 시해를 당하면 나라와 가문이 따라서 망하는 것은 밝은 이치다. 명성왕후가 죽고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왕후의 친정집인 여흥민씨.. 더보기
[명문가탐방] 여흥민씨만 왜 단죄의 대상인가 ? 2 by familytree 여흥민씨만 왜 단죄의 대상인가 ? 2 일제는 독립을 부르짖는 우리 동포들을 감옥에 가두고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주리를 틀고 목 에 칼을 씌우고 발에 쇠사슬을 채우고 단근질,채찍질,전기질, 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수족을 달아매는,콧구멍에 물붓는,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을 가하였다." [이것은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 문의 일부이다.] 이런 가운데 안동김씨 김생해 가문도 일제의 귀족이 되어 조국을 배반한 자가 4명이 나왔 다.그 중에서 김성근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김성근은 1835년 판의금부사 온순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원 김상용의 후손으로 김방행의 증손이다.1835 년에 태어나 1919년에 졸했다. 1862년 문과하여 1902년 탁지부 대신을 지냈으며 한일합방 후 일본 정부의 .. 더보기
[명문가탐방] 여흥민씨만 왜 단죄의 대상인가 ? 1 familytree 여흥민씨만 왜 단죄의 대상인가 ? 1 여흥민씨만 왜 단죄의 대상인가 ? 그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까지 앞에서 이야기 한 안동김씨 김생해 가문과 반남박씨 박소 가문에도 그 책임 이 있다. 김생해 가문은 박소 가문과 함께 한국 최강의 명문으로 쌍벽을 이룬다고 앞에서 강조했다. 이 쌍벽이 란 과환과 벌력에서 양 가문의 힘을 비교하였을 뿐이다. 세도정치와 반역행위를 놓고 볼 때는 김생해 가문이 박소 가문보다 민유중 가문과 쌍벽관계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세도정치에 있어서는 김생해 가문이 민유 중 가문보다 뿌리가 깊다. 반역행위에 있어서는 박소 가문이 민유중 가문보다는 강도가 약한 면이 있지만 비 난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 안동김씨 김생해 가문은 조선 세도정치의 대명사로 치부되고 있어 그 폐해를 여기서.. 더보기
여흥민씨 충정공[민영환 의사]에게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 by famtree 여흥민씨 충정공[민영환 의사]에게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 충정공 민영환은 민겸호의 아들이다. 민영환은 민태호에게 입양했다. 민태호의 동생 승호는 민유중의 6 대 종손으로 들어가 민비의 오빠가 되었다.승호는 누이동생을 도와 정치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위세가 좋았 으나 어느 수령이 보낸 폭약에 어머니와 함께 참사를 당했다. 민겸호는 생가로 승호의 동생이 된다. 겸호 는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도봉소 사건"의 주동자 김춘영을 처형하려다가 궁중에 난입한 군졸들에게 살해되 었다. 이런 비극 속에 이웃 나라들은 화학탄 네이판보다 더 독한 마음을 갖고 초콜릿 보다 더 달콤한 유혹으로 조정을 농락하며 국권을 짓밟았으며 일본제국주의 정부는 우리 나라의 명줄을 끊었다. 이에 분노한 백성들 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 때 .. 더보기
여흥민씨와 한국 관상 ! by famtree 여흥민씨와 한국 관상 !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은 조선조와 운명을 같이 했다. 민유중 가문을 알려면 조선조의 운명을 알아 보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이다. 조선조의 사주 팔자를 알려면 한국의 관상을 보면 된다. 관상은 양상과 음상이 있다. 천하의 만물은 한몸 에 양성과 음성을 함께 갖고 있다. 관상은 양기와 음기의 조화를 다 살펴 봐야 한다. 한국관상은 양기의 상을 우선 보기로 하자. 한국은 만주라는 대륙을 두 팔로 번쩍 들어 올리고 있는 훤 훤 장부 모습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중량급 역도 세계 참피온의 힘찬 모습이다. 만주 벌판과 시베리아 대 륙을 함북 회령 쪽으로 부터 평북 신의주 쪽으로 둘러 엎을 듯한 형세이다. 그것도 반은 앉은 자세이다.발 이 안 보인다. 이 자세에서 일어 서면 자연적으로 대륙을 팽개.. 더보기
여흥민씨 2대 재앙 by famtree 여흥민씨 2대 재앙 여흥민씨 민사용 가문은 약1540년 부터 민유중의 딸이 왕비가 되기 전인 1680년 까지 약140년 동안 황금 기이었다. 왕비의 힘을 업었다는 혐의가 없는 이 시기야말로 민사용 가문의 참모습이다. 왕실의 힘이 작용 하지 않은 제 힘으로 가문을 대성시킨 본보기로 조선조 유명 가문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인물들의 성공이 눈부시고 집안이 창성하여 뭇 사람의 우러름을 받았다. 왕실에서 이 집을 가만 두지 않았다. 마치 인기 절정에 있는 오늘날 TV의 앵커를 권력층이 가만 두지 않 는 모양으로 권부의 얼굴 제1 마담으로 뽑아 데려가 버렸다. 이로써 TV 방송국이 권력에 오염되고 편파 방 송을 하여 비난을 받듯이 민사용 가문도 왕궁의 브랙홀로 빨려 들어가 외척의 득세라는 비난의 물꼬를 텄 다. 민.. 더보기
명문가탐방 -여흥민씨 법가의 표본 by famtree 여흥민씨 법가의 표본 여흥민씨 좌의정 민정중 고조 민사용 가문은 법가의 표본이다. 나라에서 이 가문을 인정한 것이다. 이 집 민유중의 딸을 숙종의 계비로 맞아 들인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이 집에는 인현왕후 탄생 배경이 있다. 이 가문의 파조 민사용은 군수를 지냈다. 민사용은 명종 때 호조판서를 지낸 민제인의 아들이다. 민사용 은 아들을 여러 명을 낳았는데 그 중에서 여임, 여검이 현달했다. 둘 다 문과하여 하나는 공조참판, 다른 하나는 울산부사를 각각 지냈다. 그 중 특히 여검은 청백리로 명성을 날렸다. 이 두사람의 맏집 조카 기[생 부는 여준, 양부는 여건]는 문과하여 경주부윤을 지냈다. 기의 아들 광훈은 문과에 장원하여 관찰사가 되었 다. 민광훈은 1595년에 태어나 1659년에 세상을 떠났다. 자.. 더보기
명문가탐방 - 조선조 후기 문중 3강["나"군] 소개 순서 안내 by famtree 조선조 후기 문중 3강["나"군] 소개 순서 안내 한국명문 (2004-06-12 오후 6:22:57) Hit : 252 Vote : 6 지금 까지 조선조 후기 문중 2강["가"군]에 대해서 나갔습니다. 안동김씨 좌의정 김상헌 조부 김생해 가문과 반남박씨 좌의정 박세채 문강공 박소 가문의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다음은 조선조 후기 문중 3강["나"군]이 나갑니다. 조선조 후기 문중 3강 즉 여흥민씨 문충공 민정중 고조 민사용 가문, 해평윤씨 영의정 윤두수 부친 윤변 가문, 풍산홍씨 영의정 홍봉한 선조 홍수 가문[가나다 순] 순으로 나갈 계획입니다.위에서 한 구분 표시 "가" 군, "나" 군은 과환의 숫자 대소와 명문 특성의 유사성을 고려하여 여러분의 가문 감상을 쉽게 하도록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임의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