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bileFamilyTree 7! by Synium (패밀리트리) Welcome, MobileFamilyTree 7! MobileFamilyTree 7 is the first fully-fledged mobile genealogy app for iPhone, iPad and iPod touch. It comes with all the features you'd expect from a modern genealogy application, provides you with everything you need for genealogical research and works like a charm - without Mac or PC! Exchange GEDCOM files, send your family tree by e-mail or synchronize your data .. 더보기
MacFamilyTree 7! (family tree) Welcome, MacFamilyTree 7! Discover your family history! Learn where you hail from, who your ancestors were and find out intriguing facts about your family. MacFamilyTree 7 helps you explore and visualize your family history in many ways - whether you want to display family relationships in reports, charts or our innovative 3D Virtual Tree, MacFamilyTree 7 is the right solution for you. Investiga.. 더보기
[명문가탐방]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이 시끄러운 이유 2 by familytree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이 시끄러운 이유 2 도대체 안동김씨 가문과 반남박씨 가문의 흉을 왜 민씨 집에 와서 하는가 ? 그것도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다른 장에서 보학에 대한 소견을 밝히면서 잠시 그 이유를 들었으나 그것으로 부족한 듯하여 덧붙이고 자 한다. 보학이란 나나 남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행적을 정성스럽게 살펴 보고 그 좋은 점을 본 받고자 하는 것 이 그 취지라고 할 수 있다. 그 분들의 흉은 말하고 듣는 것 조차 피하는 것을 불문률로 하고 있다. 요즈음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폭력 영상물을 금하는 원리와 같다. 오늘의 폭력 영상물을 뿌리 뽑을 수 없듯이 인간 세상의 흉도 없앨 수 없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흉을 허공에 대고 퍼붓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임금의 흉도 없는 데서는 한다고 .. 더보기
[명문가탐방]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이 시끄러운 이유 1 by familytree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이 시끄러운 이유 1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이 시끄러운 이유 앞에서는 조용했다. 안동김씨 김생해 가문이나 반남박씨 박소 가문에서는 조용하더니 여기와서는 왜 갑자기 시끄러운가? 지금까지는 부드럽고 점잖은 듯한 표현을 하다가 여기서는 왜 표독하고 못된 논조로 바뀌는가? 듣기 민망 할 만큼 덕담으로 일관하더니 왜 비난과 성토 일색인가?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은 명성왕후 민중전의 친정 집이기 때문이다. 듣고 본 것이 얕고 짧은 탓에 확실이 모르지만 서양인가 어디 황제가 "짐은 국가다."라고 큰소리 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명성왕후는 황실의 안주인이다. 국모가 왜적에게 시해를 당하면 나라와 가문이 따라서 망하는 것은 밝은 이치다. 명성왕후가 죽고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왕후의 친정집인 여흥민씨.. 더보기
민유중(閔維重, 1630년~1687년) 조선후기의 문신(위키피디아) 민유중민유중(閔維重, 1630년~1687년)은 조선후기의 문신, 척신, 정치인으로 인현왕후의 친정아버지, 곧 숙종의 장인이다. 명성황후와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6대조이다. 호조참의 민광훈의 아들이자, 민시중과 민정중의 친동생이다.당색으로는 서인(西人) 노론(老論)이었고, 동춘 송준길과 우암 송시열의 문인이다. 목차 1 생애2 가족 관계3 기타4 민유중을 연기한 배우5 주석6 참고 자료7 같이 보기생애[편집] 본래 동춘당 송준길의 문하였지만 송준길의 딸 은진 송씨를 계실로 맞이함으로써 송시열의 문하가 되었다. 이후 송준길과 송시열을 사표로 받들고 그들의 예론을 지지했다. 1651년 증광시 문과에 병과 15위로 급제, 1656년(효종 7년) 병조 정랑, 1665년 전라도 관찰사, 1671년 형조 판서, 대사헌.. 더보기
[명문가탐방] 여흥민씨만 왜 단죄의 대상인가 ? 2 by familytree 여흥민씨만 왜 단죄의 대상인가 ? 2 일제는 독립을 부르짖는 우리 동포들을 감옥에 가두고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주리를 틀고 목 에 칼을 씌우고 발에 쇠사슬을 채우고 단근질,채찍질,전기질, 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수족을 달아매는,콧구멍에 물붓는,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을 가하였다." [이것은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 문의 일부이다.] 이런 가운데 안동김씨 김생해 가문도 일제의 귀족이 되어 조국을 배반한 자가 4명이 나왔 다.그 중에서 김성근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김성근은 1835년 판의금부사 온순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원 김상용의 후손으로 김방행의 증손이다.1835 년에 태어나 1919년에 졸했다. 1862년 문과하여 1902년 탁지부 대신을 지냈으며 한일합방 후 일본 정부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