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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탐방] 여흥민씨만 왜 단죄의 대상인가 ? 1 familytree 여흥민씨만 왜 단죄의 대상인가 ? 1 여흥민씨만 왜 단죄의 대상인가 ? 그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까지 앞에서 이야기 한 안동김씨 김생해 가문과 반남박씨 박소 가문에도 그 책임 이 있다. 김생해 가문은 박소 가문과 함께 한국 최강의 명문으로 쌍벽을 이룬다고 앞에서 강조했다. 이 쌍벽이 란 과환과 벌력에서 양 가문의 힘을 비교하였을 뿐이다. 세도정치와 반역행위를 놓고 볼 때는 김생해 가문이 박소 가문보다 민유중 가문과 쌍벽관계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세도정치에 있어서는 김생해 가문이 민유 중 가문보다 뿌리가 깊다. 반역행위에 있어서는 박소 가문이 민유중 가문보다는 강도가 약한 면이 있지만 비 난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 안동김씨 김생해 가문은 조선 세도정치의 대명사로 치부되고 있어 그 폐해를 여기서.. 더보기
족보학 [genealogy, 族譜學] 정의(계보학,인류학) 족보학 [genealogy, 族譜學]인류학 | 브리태니커 가계의 기원과 역사에 관한 학문.조상의 명단을 모아 그것을 계도(系圖)로 작성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족보학자라 한다. 족보는 초보적인 것부터 비교적 복잡한 것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모든 시대와 국가에서 보인다. 족보의 범위와 그 관심은 전세계적인 것이며, 학문으로서는 오늘날 주로 유럽과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 국한되어 있지만 모든 문명세계에서 연구되어왔다. 세습군주정치나 귀족정치가 실시되던 나라에서 족보학은 개인적 흥미에서뿐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도 발전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예언자 마호메트의 후손임을 주장하면서 칼리프 자리를 요구할 경우, 여기에는 종교적 의미뿐 아니라 정치적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다. 비그리스도교 국가에서는 빈번한 일부다처제의.. 더보기
여흥민씨 충정공[민영환 의사]에게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 by famtree 여흥민씨 충정공[민영환 의사]에게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 충정공 민영환은 민겸호의 아들이다. 민영환은 민태호에게 입양했다. 민태호의 동생 승호는 민유중의 6 대 종손으로 들어가 민비의 오빠가 되었다.승호는 누이동생을 도와 정치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위세가 좋았 으나 어느 수령이 보낸 폭약에 어머니와 함께 참사를 당했다. 민겸호는 생가로 승호의 동생이 된다. 겸호 는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도봉소 사건"의 주동자 김춘영을 처형하려다가 궁중에 난입한 군졸들에게 살해되 었다. 이런 비극 속에 이웃 나라들은 화학탄 네이판보다 더 독한 마음을 갖고 초콜릿 보다 더 달콤한 유혹으로 조정을 농락하며 국권을 짓밟았으며 일본제국주의 정부는 우리 나라의 명줄을 끊었다. 이에 분노한 백성들 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 때 .. 더보기
여흥민씨와 한국 관상 ! by famtree 여흥민씨와 한국 관상 !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은 조선조와 운명을 같이 했다. 민유중 가문을 알려면 조선조의 운명을 알아 보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이다. 조선조의 사주 팔자를 알려면 한국의 관상을 보면 된다. 관상은 양상과 음상이 있다. 천하의 만물은 한몸 에 양성과 음성을 함께 갖고 있다. 관상은 양기와 음기의 조화를 다 살펴 봐야 한다. 한국관상은 양기의 상을 우선 보기로 하자. 한국은 만주라는 대륙을 두 팔로 번쩍 들어 올리고 있는 훤 훤 장부 모습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중량급 역도 세계 참피온의 힘찬 모습이다. 만주 벌판과 시베리아 대 륙을 함북 회령 쪽으로 부터 평북 신의주 쪽으로 둘러 엎을 듯한 형세이다. 그것도 반은 앉은 자세이다.발 이 안 보인다. 이 자세에서 일어 서면 자연적으로 대륙을 팽개.. 더보기
여흥민씨 2대 재앙 by famtree 여흥민씨 2대 재앙 여흥민씨 민사용 가문은 약1540년 부터 민유중의 딸이 왕비가 되기 전인 1680년 까지 약140년 동안 황금 기이었다. 왕비의 힘을 업었다는 혐의가 없는 이 시기야말로 민사용 가문의 참모습이다. 왕실의 힘이 작용 하지 않은 제 힘으로 가문을 대성시킨 본보기로 조선조 유명 가문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인물들의 성공이 눈부시고 집안이 창성하여 뭇 사람의 우러름을 받았다. 왕실에서 이 집을 가만 두지 않았다. 마치 인기 절정에 있는 오늘날 TV의 앵커를 권력층이 가만 두지 않 는 모양으로 권부의 얼굴 제1 마담으로 뽑아 데려가 버렸다. 이로써 TV 방송국이 권력에 오염되고 편파 방 송을 하여 비난을 받듯이 민사용 가문도 왕궁의 브랙홀로 빨려 들어가 외척의 득세라는 비난의 물꼬를 텄 다. 민.. 더보기
명문가탐방 -여흥민씨 법가의 표본 by famtree 여흥민씨 법가의 표본 여흥민씨 좌의정 민정중 고조 민사용 가문은 법가의 표본이다. 나라에서 이 가문을 인정한 것이다. 이 집 민유중의 딸을 숙종의 계비로 맞아 들인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이 집에는 인현왕후 탄생 배경이 있다. 이 가문의 파조 민사용은 군수를 지냈다. 민사용은 명종 때 호조판서를 지낸 민제인의 아들이다. 민사용 은 아들을 여러 명을 낳았는데 그 중에서 여임, 여검이 현달했다. 둘 다 문과하여 하나는 공조참판, 다른 하나는 울산부사를 각각 지냈다. 그 중 특히 여검은 청백리로 명성을 날렸다. 이 두사람의 맏집 조카 기[생 부는 여준, 양부는 여건]는 문과하여 경주부윤을 지냈다. 기의 아들 광훈은 문과에 장원하여 관찰사가 되었 다. 민광훈은 1595년에 태어나 1659년에 세상을 떠났다. 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