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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조선중후기 계보학/가문이야기

여흥민씨 충정공[민영환 의사]에게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 by famtree

여흥민씨 충정공[민영환 의사]에게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


충정공 민영환은 민겸호의 아들이다. 민영환은 민태호에게 입양했다. 민태호의 동생 승호는 민유중의 6 대 종손으로 들어가 민비의 오빠가 되었다.승호는 누이동생을 도와 정치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위세가 좋았 으나 어느 수령이 보낸 폭약에 어머니와 함께 참사를 당했다. 

민겸호는 생가로 승호의 동생이 된다. 겸호 는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도봉소 사건"의 주동자 김춘영을 처형하려다가 궁중에 난입한 군졸들에게 살해되 었다. 이런 비극 속에 이웃 나라들은 화학탄 네이판보다 더 독한 마음을 갖고 초콜릿 보다 더 달콤한 유혹으로 조정을 농락하며 국권을 짓밟았으며 일본제국주의 정부는 우리 나라의 명줄을 끊었다. 이에 분노한 백성들 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 때 일경들은 한 여고생을 붙들었다. 그 여고생을 나체로 나무 십자가에 묶었다. 그들은 숯불 화로를 갖다 놓고 철사를 새빨갛게 달궈서 그 여학생의 유방을 마구 지졌다. 그 뒤 칼로 마치 무우쪽처럼 사지를 베었다. 붉은 피가 빗줄기처럼 흘러 내렸다. 이것은 박은식의 "조선독립운동지혈사"에서 일제의 만행을 규 탄하는 내용의 극히 적은 부분이다. 

이와 같이 죄없는 이들이 콸콸 흘린 피가 대지를 적시기 전인 1905년 여흥민씨 민유중가의, 시종무관으 로 있던 민영환이 일어섰다. 나라안 온 백성들의 슬픔을 대신하여 백관을 거느리고 궁궐 앞에 나가 조약을 파기하고 다섯명의 매국노를 처형하라는 글을 올리고 울부짖었다. 이에 일본 헌병들에게 구금되고 백관도 해산당했다. 풀려난 뒤도 거듭 궁궐 앞에서 목숨 걸고 항의했다. 이로써 일제는 임금까지 협박하여 왕명거 역죄로 구속하였다. 그 뒤 평리원에서 풀려나 이미 국운을 돌이킬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국민들이 각성하여 구국의 대열에 적극 동참할 것을 요청하며 각국 외교 사절에게 만행을 알리는 편지를 남기고 단도로 자결 했다. 이에 백성들은 부모를 잃은 듯 슬퍼 하였다. 국권 회복운동의 용사들이 화산의 용암처럼 거리에 흘 러 넘쳤다.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아저씨와 조카가 어찌 이토록 다르단 말인가 ? 숙부는 세도로 비난의 대상이요, 조카는 충의로 존경의 대상이니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 숙부를 보고 조카를 나무랄 수 없고, 그렇다고 조 카를 보고 아저씨를 나무라지 않을 수는 없다. 누가 있어 충정공[민영환 의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 가 ?

여흥민씨 충정공[민영환 의사]에게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      
한국명문 (2004-06-16 오전 12:19:51)   Hit : 90   Vote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