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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조선중후기 계보학/가문이야기

[명문가탐방]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이 시끄러운 이유 1 by familytree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이 시끄러운 이유 1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이 시끄러운 이유 앞에서는 조용했다. 안동김씨 김생해 가문이나 반남박씨 박소 가문에서는 조용하더니 여기와서는 왜 갑자기 시끄러운가? 지금까지는 부드럽고 점잖은 듯한 표현을 하다가 여기서는 왜 표독하고 못된 논조로 바뀌는가? 듣기 민망 할 만큼 덕담으로 일관하더니 왜 비난과 성토 일색인가?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은 명성왕후 민중전의 친정 집이기 때문이다. 

듣고 본 것이 얕고 짧은 탓에 확실이 모르지만 서양인가 어디 황제가 "짐은 국가다."라고 큰소리 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명성왕후는 황실의 안주인이다. 국모가 왜적에게 시해를 당하면 나라와 가문이 따라서 망하는 것은 밝은 이치다. 

명성왕후가 죽고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왕후의 친정집인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이 성하겠는가? 왕후가 죽고 나라가 시 끄러운데 어찌 왕후의 친가가 조용할 수 있겠는가? 나라[국가]는 생물이다. 나라도 다른 생물 모양 생겼다 없어지기는 마찬가지다. 그 수명이 다를 뿐이다. 생겼다가 몇일만에 죽는 것, 몇달, 몇년만에 죽는 것도 있지만 동서양으로 시야를 넓혀 보면 일,이백년 짜리도 적지 않다. 나라의 수명이 수백년을 가는 것도 복이다. 

조선왕조의 수명이 모두 잘 알다싶이 500년이다. 장수를 한 셈이다. 천수를 누렸으며 복상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그 유덕을 칭송해야 될 상주인 우리 후손들이 3년상 33번을 치루고도 남는 긴 세월이 흘렀다. 아직도 "아이고,아이고"하는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유덕을 못잊어 그 주검을 애도하는 효자,효손 의 지극 정성이던가? 아니다. 상주라는 현대의 우리는 임종 후부터 눈물 한 방울 흘린 적 없고 오직 죽은 아비를 염도 하지 않고 고쟁이를 갈기 갈기 찢어서 냄새나는 치부를 드러 내놓고 침을 뱉으며 욕을 바가지 바가지로 퍼부었다. 아비 죽음에 조상 묘소에 가서 할애비, 할애비의 할애비 관까지 끌어다 내놓고 할애비 유골 중에서도 치부 만 골라 저주를 고강도 프라스틱 바가지로 퍼부었다. 세상에 이런 못된 상주가 있을 수 있는가?

동쪽에서 찬란한 해가 솟아 오르고 둘만 모여도 노래하며 춤추고 아이에서부터 늙은이에게 이르기까지 여자나 남자나 서로 아끼며 예절 하나만은 잘 지켰던 한겨레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고얀놈이 있을 리가 없다. 

알고보니 저주를 퍼붛는 상주들은 일본이나 미국으로 양자를 간 사람들이었다. 가서 호로 자식이 다 되 어 버렸다. 예의를 알리도 없고 장사 지내는 법도 모르는 이들이 배워 온 것이 제 아비, 할아비가 남겨 놓 은 것은 모두 원수 대하듯 부시고 쪼개고 가르고 짜르고 뭉개기 때문에 역사가 난도질 당하고 나라가 시끄 러워 졌다. 그들한테 모르게 물든 나도 덩달아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에 와서 시끄러워 졌다. 미안하기 짝 이 없는 일이다.

한국명문 (2004-06-18 오전 5:08:10)   Hit : 158   Vote : 11